TRAVEL

부산에서 한 걸음, 세 갈래 길

경주·통영·남해. 긴 휴가가 없어도 하루 반이면 둘만의 아침이 생겨요.

EXNUL · 2026.10

도착하기 전에 먼저 냄새가 왔다. 소금기와 솔잎이 섞인 냄새였다.

부산을 떠난 지 두 시간이 채 안 됐는데, 버스 창문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내리자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옆자리에서 졸던 그가 눈을 뜨고 “다 왔어?” 하고 물었다. 아직이었다. 그래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부산에 사는 커플에게는 지도가 넉넉하다. 조금만 나가도 길이 세 갈래로 갈린다. 돌담과 한옥 쪽, 섬이 흩어진 바다 쪽,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솔숲 쪽.

올가을, 주말 세 번에 나눠 세 갈래를 다 걸어 봤다.

GYEONGJU

경주, 마루에 앉아 차가 식을 때까지

경주, 늦은 오후 햇빛이 든 한옥 마루.
경주, 늦은 오후 햇빛이 든 한옥 마루.

한옥 마루는 오후 다섯 시쯤 가장 따뜻하다. 문살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나무 바닥에 격자를 그린다. 내가 차를 따르는 동안 그는 문살 너머에서 그 빛을 찍고 있었다. 찻잔에서 김이 오르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경주는 걷다가 멈추는 곳이다. 오래된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넓은 잔디 언덕이 나오고, 거기서 또 앉게 된다. 일정을 촘촘히 짜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도시.

밤에는 창호지 너머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생각보다 크다. 그 소리를 듣다가 둘 다 일찍 잠들었다.

처음 같이 떠나는 여행이라면 이 길이 덜 지친다. 기차에서 내려 시내까지 한 번 더 이동해야 하지만, 그래도 세 곳 중 가장 가깝다.

TONGYEONG

통영, 언덕 끝에서 섬을 세다

통영은 항구에서 시작해 언덕으로 올라간다. 골목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바다가 조금씩 넓어지고, 꼭대기에 서면 작은 섬들이 물 위에 점처럼 흩어져 있다. 몇 개인지 세다가 그만뒀다.

내려오는 길, 항구 앞에는 새벽 일을 마친 생선 상자들이 물기를 흘리며 쌓여 있었다. 갈매기 소리가 그 위를 몇 번 지나갔다.

사진을 많이 남기고 싶은 커플에게 맞는 길이다. 해산물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다만 오르막이 많다. 신발 끈은 출발 전에 한 번 더.

NAMHAE

남해, 바위 위에서 늦은 오전

남해, 맑은 바다 앞 너른 바위.
남해, 맑은 바다 앞 너른 바위.

한낮의 바위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으니 바람이 머리카락을 계속 한쪽으로 넘겼다. 수평선은 흐릿하게 바래 있었고, 파도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소리를 냈다.

남해는 할 일이 적은 곳이다. 그게 이 길의 장점이다. 조용한 바다 마을과 솔숲, 계단식 논 사이를 천천히 지나면 하루가 금방 기운다. 점심은 마을 식당 평상에서 먹었는데, 생선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바위까지 따라왔다.

대화가 편해진 커플에게 권하고 싶다. 늦잠과 산책과 바다면 충분하다. 단, 버스 간격이 길어서 섬 안을 돌아다니려면 차가 있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CROSSROADS

갈림길에서 고르는 법

경주 골목에서 커피를 들고 걷다가 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그 순간을 찍어 두었을 뿐이다.

이동이 짧은 게 먼저라면 경주로. 바다와 사진이 먼저라면 통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면 남해로.

어느 쪽이든 첫날 일정은 반만 채워 둔다. 둘이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거기서 더 머물 수 있게.

돌아오는 버스에서 창문을 다시 손가락 한 마디만큼 내렸다.

소금기 대신 도시의 먼지 냄새가 들어왔다. 그는 이번에도 졸고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섬 하나를 끝까지 따라 봤다.

글 EXNUL 편집부

INFO

세 갈래 길 한눈에 보기

경주
부산역 → 신경주역 KTX 약 28~35분, 신경주역에서 시내까지 버스·택시로 한 번 더. 돌담길·한옥·잔디 언덕, 천천히 걷는 여행. 예산 중간(한옥 숙소는 시설에 따라 차이 큼).
통영
부산종합버스터미널 → 통영종합버스터미널 시외버스 약 2시간 16분. 항구·언덕 골목·섬이 보이는 바다, 사진 여행. 예산 중간~조금 높음(바다 전망 숙소·섬 배편 추가 시).
남해
부산서부버스터미널 → 남해시외버스터미널 시외버스 대부분 약 1시간 58분(일부 편 더 오래 걸림), 섬 안은 차가 편함. 한적한 바다 마을·솔숲·계단식 논, 쉬는 여행. 예산 낮음~높음.

이동 시간은 2026-10-15 확인 기준이며 바뀔 수 있어요. 떠나기 전 코레일·각 터미널 공식 안내로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예산은 금액 대신 낮음·중간·높음으로만 적었어요. 기사 속 사진은 AI로 만든 가상 인물이에요.

참고한 자료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EXNUL가 우리 말로 정리했어요. 숫자는 기준 날짜 이후 바뀔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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